2020년 3월 8일
저번 금요일에 준호랑 홍대에 있는 보드게임 매장에 가서 보드게임 두 개를 샀다. 벼룩 서커스라는 휴대성 좋고 귀여운 카드게임과 세븐 원더스 듀얼이었다. 매장 옆에는 책상이 늘어져 있어 거기서 내가 산 게임 두 개를 했는데 재미 있었다.
그 후에 우리는 들뢰즈 감각의 논리 세미나 장소로 향했다. 꽤 일찍 도착했는데 동교는 이미 거기 있었고, 무언가를 열심히 노트북으로 쓰고 있었다. 오늘 발제 말고도 다른 발제가 있다고 했던가. 세미나 시작 전까지 시간이 남아서 음료를 시키고 준호랑 또 벼룩 서커스를 했다. 실컷 하고 있으니 세미나 하시는 분 2명이 오셨다. 한 분이 우리가 하는 게임을 보고 재밌겠다고 말씀하셨다. 세미나 끝나면 같이 하자고 쾌활하게 말했다.
그런데 세미나가 진행되니까 급격히 피로해지며 금방 끝낼 만한 책을 너무 오래 물고 늘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루했다. 세미나 듣는 게 괴로웠다. 내가 들뢰즈를 거의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냥 나는 공부 라는 행위를 1시간 이상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몹시 하기 싫어지는 버릇이 있다. 특히 다 같이 세미나를 할 때 그렇다. 그래서 대학원 수업 3시간이 아주 고달픈 것이기도 한데, 힘을 빼고 듣자 생각하니 아무 것도 들어 오지 않고 힘을 주고 들으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못 한다. 아무튼 세미나가 무척 지루하고 고되서 괜히 들뢰즈 세미나에 참석하겠다고 호기를 부린 게 아닐지 내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다! 그리고 이 책은 17장까지 있고 세미나는 4번 정도를 진행했는데 겨우 6장을 끝낼락 말락 하는 이 느릿한 진도를 참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 화내기 싫으니까 애꿎은 세미나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런 나를 발견하자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10시 즈음에 나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기숙사가 아니라 본가로 갔다. 다음 날에 과외가 있었다.
그리고 핸드폰에는 수학 과외 문의 문자가 와 있었다. 신종코로나사태로 인한 어쩌구 저쩌구로 인해 나 또한 받기로 한 돈을 못 받게 된 상황에서 돈 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냉큼 잡는 게 합리적이나 나는 더 이상 과외를 하기가 싫고 그렇다고 문자를 준 사람에게 정중한 거절을 보내기도 귀찮아서 그냥 씹었다. 토요일에 과외 수업 하고 있는 도중 그 문자를 준 사람의 번호로 전화가 울렸는데 그것도 씹었다. 그러니까 엄마한테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엄마는 하기 싫어도 혹시 모르니까 3월에는 안 되고 4월에 다시 연락 달라는 식으로 답장을 하라고 시켰다. 나는 하라는 대로 했다.
본가에 오면 누워 있는다. 뭐 언제는 안 누워 있었냐만은 기숙사에 있을 땐 누워 있다가 미친 듯이 놀 사람을 찾거나 무언가 정신 팔릴 것을 찾는다면 본가에서는 그냥 무력하게 누워 있는달까. 안 그래도 전기 장판 때문에 침대에 누워 있기가 매우 좋다. 매트리스도 당연히 기숙사 것보다 훨씬 좋고. 누워서 맨날 폰만 보고 이번에는 닌텐도 삼다수로 동물의 숲을 하느라 눈이 뻑뻑했다. 화장실 가서 거울을 보니까 양 눈이 다 충혈되어 있었다. 꼴이 거지 같았다.
세미나 중간에 ㅌㅌ하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난 원체 공부를 같이 못 하는 타입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렇다고 혼자서 잘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하기로 마음 먹은 공부에 완전히 질려 버린 느낌이다. 흥미를 잃은 것은 아닌데, 그냥 꼴 보기가 싫다. 솔직히 이런 상태로 석사과정을 강행하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몇 주 전에는 엄마한테 이번에는 정말 잘 할 수 있을 거야 라고 떵떵거리며 외쳤는데 지금은 위축된 상태이다.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1억명이 있어도 나는 바뀌려고 노력조차 안 할 것이다. 노력 안 하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려서 그렇다.
그렇다고 돈을 버느냐? 그것도 안 하고 있고... 솔직히 누워 있고만 싶고 벼룩처럼 누구에게 빌 붙고 싶다.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겠지만... 모르겠다...
철학자가 되겠다고 나대지 말고 그냥 인터넷 블로그에다가 글 올리는 사람이나 할 걸 그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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