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4일 (2)

(이건 진짜 오늘 일기임)

으아 터져버릴 거 같아서 빠르게 샤워하고 컴퓨터 켜서 쓰고 있다. 그 전까지는 무얼 하고는 싶은데 그 무엇이 뭔지 모르겠어서 미치겠는 상태였다. 일단 누워 있고 싶은 건 아니었다. 누워 있는데 무언가 불안하고 아무튼 이거 말고 다른 거 해야 된다 생각하면서 핸드폰 켜서 유튜브도 보고 웹소도 보고 그랬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럼 글쓰기인가? 싶어서 몇 시간 전에 일기 하나 올렸는데 또 쓰고 있다 (엄밀히 말해 그건 저번 주 일들을 쓴 거긴 하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게 글쓰기가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이 포스팅은 올라올 수도 안 올라올 수도 있다 그것은 일단 쓰고 봐야 알 것이다

여러 명의 일기를 읽었다 일단 떠오르는 건 연숙이의 일기 김승일 씨가 출간한 책의 일기 그리고 소설 같이 쓰인 동교의 일기 그리고 삭제된 성훈이의 일기(성훈이는 아주 괘씸하다 진짜로 일기 올라오면 바로 캡쳐를 떠야겠다) 준호의 일기(정말 간만이었다)

사람마다 일기의 성격이 달라서 신기하다 일단 연숙이의 일기는 너무너무 재미 있다. 읽으면서 나는 연숙이의 세상이 어떨지 감히 짐작하기도 한다. 연숙이의 세상은 아주 산만하다. 연숙이가 기민하게 느끼는 것들이 너무 신기하고 (이해를 못해서 신기한 게 아니다 연숙이가 그걸 문장으로 표현하고 그걸 읽자 나도 그것을 느낄 수 있어서 신기하다 가끔씩은 이해 못해서 신기한 것도 있긴 하다) 아주 촘촘따리곤조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겠다 (나는 곤조 라는 밈을 잘 모르겠다 어느 정신병자의 말버릇이겠지) 그건 연숙이가 정말 많은 사람(내 기준에서)을 만나고 정말 많은 일들을 (여전히 내 기준에서) 벌이기 때문이겠지

성훈이의 일기도 재미 있다 성훈이는 정말 문학적 재능이 있는 거 같다 성훈이가 쓰는 문장들은 시적이거나 간지가 난다. 아무래도 그런 시적이고 간지나는 문장들이 부끄러운 모양인지 아니면 그냥 자기 이야기를 꺼낸 게 부끄러운 건지 얼마 뒤 삭제한다. 그래서 성훈이를 볼 때마다 욕을 하고 일기 지우지 말라고 협박한다. 협박은 잘 안 먹힌다.

김승일 씨의 <1월의 책>을 샀는데 거기에 2014년 말에서 2015년 초까지의 김승일 씨의 일기가 수록되어 있었다. 죽고 싶다 시 써라 라는 말이 반복되는 그 일기들은 재미 있었다. 공감 가는 부분도 많았다. 그런데 책 마지막에 작가 이력이 실려 있는데 0세부터 29세까지 1년 단위로 자기가 뭘 했는지 어땠는지가 기록되었는데 이걸 본인이 썼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작가가 너무 자의식 과잉인 거 같아서 (자의식이 과잉되어야 작가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간 역했다. 동족혐오에서 비롯된 것일테다. 개인적으로 난 책에 실리는 이력은 본인이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보통 이력은 남이 써주니까) 그런 의미에서 요새 나오는 책들 날개에 인쇄된 이상한 주관적 자기소개도 싫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나 철학은 취업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따위의 것들. (그런 걸 보면 니에미한테가서말해 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몇년생 어디 출생 뭐를 했다 정도로, 5줄을 넘지 않게 하는 게 제일 깔끔한 거 같다. (이럴 때마다 나의 보수적 취향을 느낀다 예를 들어 힙한 책의 가독성 떨어지는 디자인이 너무너무 싫다) (그냥 다들 하고 싶은 것을 하세요)

체감상으로 몇년 만에 보는 것 같은 준호의 일기는 누군가가 자기가 까먹은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섭다 그런 내용이었는데 나는 기억력의 천재이기 때문에 준호에게 그런 짓을 많이 한다. 그래서 준호는 내가 무섭다고 했다. 준호랑 있던 일을 잘 기억해야지. 디테일까지 촘촘하게. 앞으로 더더욱 준호에게 무서운 사람이 되어야지. 나는 진짜 변태다. 준호는 니체 도덕의 계보학을 거론하며 망각의 미덕을 주장할 것이다. 사실 나도 어느 정도 그 미덕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페잉 이라는 관종짓을 시작하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받고 여러 감상을 듣곤 하는데 나는 아직도 내 일기를 읽는 사람들이 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덮밥님이 중학생 때 내 텀블러 일기를 보고 트위터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 일기를 성실히 읽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페잉으로 들어온 감상도 보통 일기 잘 읽고 있다는 감상이 대부분이라서 정말 읽는 사람들이 많구나 생각했다. (나는 기껏해야 몇몇 친구들만 잠깐 읽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독자가 많은 건 좋은 일이다. 아무튼 이것도 사람들이 읽겠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한가? 그런데 감사하다는 말 외에 적절한 표현을 못 찾겠다)

오늘 스터디에서 희철이가 나한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은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사회 생활에는 도움이 될 말이라서 잘 기억해둬야겠다. 나는 말을 너무 많이 한다. (심지어 입을 다물고 있을 때에도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한다)

성취감을 얻고 싶어서 헤겔 발제를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헤겔 정신현상학 입문을 읽고 있는데 그거 읽다가 머리 터져서 누워 버리게 되었다 눕고 나서 내가 하고 싶은 건 이게 아닌데 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일기의 끝과 처음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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