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1일
너무 심심해서 죽어버릴 거 같다 미쳐버릴 거 같다 를 느끼는 중인데 약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다른 식으로 바뀐 거 같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미친듯이 따분할 뿐이다... 수많은 웹소설 수많은 만화 수많은 유튜브 영상 수많은 게임에 몰두하다가 그것이 모두 질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에... 심지어 너무 누워있었기 때문에 몸이 피곤하지 않아서 잠도 안 올 때...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무료해지는 순간이 닥쳐온다. 그런데 죽고 싶지가 않다 <- 이래서 환장하겠음
언제 이 악물고 수업자료 리딩을 하다가 너무 졸려가지고 (그런데 침대에 누우면 잠 안 옴 그냥 하기 싫은 거임) 방 청소를 한 적이 있는데 어지러진 것들을 정리하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먼지와 터럭들이 사라지니까 너무 뿌듯했다. 성취감에 목 말라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대학원 와서 하는 공부는... 전혀... 전혀 나에게 성취감을 주지 못했다.. 그나마 흥미를 느낄 만한 분야를 공부했다고 말하면 여름에 지도교수로부터 더 이상 교양 쌓는 일에 집중할 때가 아니라 네가 주력으로 삼을 것에 집중해야지 라는 소리가 어른거린다. 학부 시절부터 철학과에서 애를 먹은 건 동료 대학원생들보다 상대적으로 후달리는 외국어 능력 그리고 '분석적'으로 논증을 구사하는 것인데 이 둘을 갈고 닦을 생각이 없다. 오로지 그것은 나한테 의무로만 느껴지고 나는 이제 의무니 뭐니 하는 것들을 어떤 숭고하고 가슴이 웅장해지는 이유로 꾹 참고 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이제 나를 그 정도로 학대하지 않을 정도로 나 자신과 친해졌다. 그냥 내가 못 하는 것 내가 하기 싫은 것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까지 나 자신을 아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너는 이래서는 안 돼 대체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라는 자기책망의 목소리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나 그 자기책망은 오히려 나에 대한 삐뚤어진 자기애 자기연민이라는 것을 안다.
어제 너무너무 심심해서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한테 연락했고 민규와 한영이랑 저녁을 같이 먹었다. 유가네 닭갈비였는데 그냥 프랜차이즈 닭갈비 맛이었다. 한영이는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게 편하다고 말했고 오늘은 연구실까지 올라가기 힘드니까 카페에 가서 공부할 것이고 너도 하렴 이라고 말했는데 나는 공부하기 싫어서 그냥 기숙사로 돌아갔다. 발작하듯 심심했던 게 어느 정도 현타?로 잠잠해졌고 기숙사에 와서 게임을 하다가 야식으로 육회를 시켰고 실수로 왓챠 한달 정액제 결제를 한 게 아까워서 왓챠로 왕좌의 게임 1-1화 중간까지 봤다.
정말 웃기지만 나는 더 이상 머리를 쓰는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나한테는 그냥 공장일이 맞지 않을까 하는 전혀 비현실적이고 어쩌구저쩌구하고 현직 생산직에게 모욕이 될 수 있는 아 아니 그만하자 암튼 그런 생각에 푹 빠져들었다. 매일매일 파스를 붙이고 다리와 발이 퉁퉁 부어서 매일 밤 압박 레깅스를 입고 잘 것이고 일 갔다 오면 잠만 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삶에 무료함?이 끼어들 수 있을까? 무의미함은 느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 심심함은 아무튼 사치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랑 적당히 친해지고 나니까 무의미함에서 무료함으로 빠져버렸다. 그냥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일까? 대체로 많은 일들은 시간이 해결책이니까.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존버밖에 없을 것이고, 존버는... 그냥 숨을 쉬고 있으면 된다. 물론 숨 쉬는 게 깝깝하지만. 체험적 시간은 1억년이지만 아무튼 시간 그 자체는 과거가 그랬듯 미래가 그랬듯 늘 그 속도로 움직일 것이고 나는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기다리면서 정말 아무것도 안 할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쨌든 살아 남으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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