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9일
어제는 오랜만에 애인을 만났다. 애인은 정말로 석사졸업이 확정되었다. 논문 인쇄 뒤에 지도교수가 요구하는 거지 같은 수정 요구도 모두 끝났다고, 이제는 인턴십을 알아보면 된다고 한다. 기쁜 일이다. 뒤늦은 생일 선물도 줬다. 돗포 치마린즈 인형인데, 치마린즈 시리즈가 퀄리티가 더 좋은 것 같다. 일단 머리카락 디테일을 다른 인형들보다 더 신경 썼다.
점심 먹으러 아비꼬에 가서 늘 먹던 것을 먹었다. 카레우동을 먹으면서 나는 요사이 자살충동과 자해욕이 심해져서 아빌리파이 그 다음에는 탄산리튬을 처방 받게 되었고, 안정제를 더 많이 먹게 되었고, 의사 선생님께서 걱정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 죽고 싶은 거라고, 내가 원하는 것은 죄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거라고, 그리고 이 바람이 증상인지 원래 나의 바람인지 이제 구분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게 다 연명치료인 게 아닐까, 나는 누구의 보살핌도 받고 싶지 않고 그냥 혼자 끌어 안고 죽고 싶다. 그러면서도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으며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 그게 내 바람인 것 같다. 정신의학과든 상담심리학이든 사람은 본래 살고자 한다, 죽기 싫어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하는데 만약 어떤 사람이 정말로 죽고 싶어한다면 어떨까? 같은 철학적 질문까지 던졌다.
애인은 울었다. 속상하다고 한다. 나를 원망해서 우는 건 아니었다. 애인은 그걸 말했고 사실 말하지 않아도 나는 알았다. 애인의 심리상담사는 애인한테 항상 나와의 관계가 어떻냐고 묻는다고 한다. 나와의 관계가 애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면, 전적으로 애인의 심리상담사는 나와의 관계를 재고해 볼 것을 권할 것이다. 그걸 상상해도 나는 별로 불쾌하진 않다. 그런데 심리상담사가 물을 때마다 애인은 나를 사랑한다고, 내가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고, 나보다 먼저 앞서 나가서 나의 (사전적 의미의) 재기를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고 한다. 이번 석사 논문도 그래서 이를 악물고 썼다고, 네가 이제 논문으로 힘들 때 독려를 해 주고 싶다고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나는 네가 죽고 싶어하는 사람이라고 믿지 않는다, 설사 네가 자살하더라도 그건 병 때문에 죽은 거라고, 혹은 사고사라고 여길 거라고 말했다.
애인의 말에 머리로는 감동을 받았으나, 감정은 무심했다. 결국 논증이 안 되는 믿음, 고집, 그런 게 사람을 살게 하는 것 같다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밥을 다 먹고 손을 잡고 걸어가다가 이상하게 힙하게 생긴 24시간 무인카페에 갔는데, 무인카페답게 묘하게 더러웠다. 그러다가 애인이 자기 오늘 상담 일정 있는 거 까먹었다고 (상담 받는 게 아니라 상담을 하러) 일찍 헤어졌다. 어차피 정신병원에 가야 해서 저녁 먹기 전에 일찍 자리를 파할 필요가 있었다.
광역버스를 타면서 생리가 울컥울컥 쏟아졌다. 그 때문에 생리가 새서 바지까지도 묻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앞에 있는 이마트에 들러서 처리를 하려고 가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헐레벌떡 뛰어와서 학생 뒤에 생리 샜다고 알려주시기까지 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안 그래도 화장실 가려고 했다고 대답하고 이마트로 가서 아무 반바지를 사고 물티슈를 사서 바지에 묻은 생리혈을 박박 닦고 새로 산 바지로 갈아입었다.
정신병원에 가서 저번과 똑 같은 처방을 받았다. 좀 괜찮은 것 같아요, 라고 무심하게 말했더니 선생님께서 아무튼 당분간은 일주일에 한번씩 보자고 했다. 약을 받고 올리브영에 가서 왁스스트립과 마스크팩이랑 알로에 수딩젤을 샀다. 다시 이마트에 들러서 공차에 가서 블랙 밀크티 점보사이즈에 펄 2번 추가한 것을 포장해갔다. 이제 법이 바뀌어서 음료를 마신 채로 버스에 타지 못하기 때문에 종이봉투에 담아서 가지고 갔다.
그러다가 버스가 급정거를 해서 음료가 어디에 부딪혔는데, 실링이 뜯어져서 음료가 좀 샜다. 진짜 오늘은 일진이 안 좋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휴지로 바닥을 벅벅 닦는데 버스가 좌회전을 하고 멈추고 급진하고 할 때마다 음료가 손 쓸 수 없이 흘러가서 이러다가 버스 모든 바닥을 닦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그러진 않았지만... 아무튼 자꾸 음료가 흘러서 계속 휴지로 닦아야 했다. 겨우 목적지에 도착해서 고생해서 가져온 버블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고생한 것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집에 와서 왁스 스트립으로 다리털을 뜯고 겨드랑이 털도 뜯었다. 겨드랑이 털을 뜯을 때면 늘 피가 난다. 바깥으로 흐르지는 않지만 모공에 피가 고인 게 보여서 흡사 멍이 든 것처럼 보인다. 다리에 듬성듬성 털이 덜 뜯긴 부분은 면도기로 밀거나 그래야 하는데 귀찮아서 안 했고, 겨드랑이는 내가 손으로 쥐어서 뽑았다. 털을 없애고 겨드랑이와 다리에 알로에 수딩젤을 발랐다.
친오빠가 일찍 퇴근해서 저녁으로 피자를 시켜서 피자 한 조각을 먹었다. 그리고 아이패드로 블랙 미러 시즌 1의 첫 화와 두 번째 화를 봤다. 그러다가 폰 게임을 좀 하고, 트위터를 좀 들여다보다가 잤다.
자는데 이상한 꿈을 꿨다. 요상한 영화를 보는 꿈이었는데 제목이 제라드걸? 게라드걸? 이었다. 영어로 쓰여진 제목 이었는데 꿈에서 깨고 나서 혹시 실재하는 영화인가 하고 검색해봤는데 쥐뿔도 나오지 않았다. 그 영화에서 어떤 여자들이 열심히 뛰어다닌 장면(이건 블랙미러 1시즌 2화의 이미지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이 있었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소년인지 소녀인지 분간이 안 되는 아이와 확실히 소녀인 애 두 명이 눈밭에 누워 있었다. 걔네들은 천사 같은 날개를 달고 있었는데,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지만 한 명이 가진 날개는 하늘빛이었다. 확실히 소녀인 애가 소년인지 소녀인지 알 수 없는 애한테 자기 머리통을 이빨로 깨물어줄 것을 요구했다. 저들이 내 머리에 구멍을 내는 것보다 네가 머리를 깨물어주는 게 좋을 거 같다면서. (이때 ‘저들’이 누구인지는 모름) 소녀인지 소년인지 아무튼 걔는 소녀인 애의 머리를 깨물었다. 피가 툭 눈밭에 떨어졌다. 그리고 우드득 또 깨물어서, 핏방울이 눈밭에 더 선명히 남는 걸로 영화가 끝난다. 그리고 꿈에서 깼다. 쓰고 보니까 무슨 렛미인 같은데 나는 그걸 소설로만 읽었지 영화로는 보지 않았다... 그래도 뭔가 전날에 넷플릭스로 블랙미러를 본 영향이 큰 것 같다.
아무튼 새벽 5시에 깼고 정신이 멀똥해서 유튜브로 마운트 앤 블레이드 실황 영상을 보다가 (두 번째 재탕하는 중이다) 앉아서 일기를 쓰고 있다. 날이 흐린데 밝다. 확실히 장마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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