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4일
2주 전엔 이번에 엄마가 환갑이니까 좀 신경 써서 준비하자고 아빠가 그랬는데 아빠랑 엄마 사이 안 좋아져서 설 연휴 내내 냉전 분위기였고 생일인 당일 엄마한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한 건 나뿐이었다. 도저히 가족이 모여서 외식을 할 분위기가 아니어서 엄마한테 나랑만이라도 저녁 맛있는 거 먹을까? 물었는데 엄마는 굳이 뭘 됐다고 하면서 괜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엄마가 월세 내놓은 집 청소하러 외출한 사이에 아빠가 부엌에서 잡채를 만들었는데 당면이 다 불어 터져서 아빠가 재료 아깝다면서 한탄했다. 잘못 보고 간장을 일본 유자 간장?을 넣어서 당면이 불었다는 것이다. 한 접시 나한테 주고는 맛 없으면 먹다가 남기라고 했는데 그냥 다 먹었다. 부엌을 정리하고 나서 아빠는 나한테 자기가 있으면 괜히 싸움 나니까 오빠랑 나랑 엄마랑 저녁 나가서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말하고서는 나갔다. 도대체 무슨 일로 집안 분위기가 좆창난 건지 정말로 알 수 없는 가운데 엄마 생일 당일마저도 이 모양 이 꼴이 되어서 졸라 참고 있었던 슬픔과 우울이 펑 터져서 정말로 웃음이 안 나오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서 알프라졸람 두 알을 먹고 암막커튼을 치고 안대를 끼고 잠을 잤다. 너무나 슬플 때는 자는 게 답이다... 안대를 꼈는데 자꾸 눈물이 나와서 그냥 안대를 뺐더니 그제서야 눈물이 나오지 않았고 그대로 2시간 정도 잠을 잤다. 자는 사이에 오빠가 피자를 시킨 모양인지 저녁 먹으려고 부엌에 가니까 엄마가 피자 먹어도 되고 아니면 밥 데워서 뼈해장국 남은 거랑 같이 먹으라고 했다. 그제부터 육회가 땡겨서 육회 시키려고 했는데... 라고 하니까 엄마가 그건 내일 먹자고 했다. 어쨌든 밥을 먹고 이를 닦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오늘의 슬픔을 쓴다.
약을 먹고 누워 있으면서 그냥 가만히 내 속을 뒤집어놓는 아픔을 있는 그대로 느꼈었다. 마음이란 건 왜 있어서 나를 아프게 할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이렇게 아픈 것을 보니 그 전까지는 즐거웠고 행복했구나 싶었다. 인간의 정신을 망가뜨리는 건 절망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래도 무심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했다. 오랫동안 마음이 아파서 무심해지는 것만큼 큰일은 없다. 거의 빈사 상태인 마음을 살려 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아까 전에 가슴이 찢어져라 아플 때는 차라리 마음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바랐다가도 정신을 가다듬고 안 아픈 것보단 아픈 게 나아 마음이 죽은 것보단 살아서 나를 아프게 하는 게 나아 라고 다짐하듯 되뇌었다. 그러다가 잠에 들 수 있었고 일어나서 밥까지 먹으니까 조금은 웃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설날 당일 때 지훈이랑 램프를 만나서 놀았는데 어떻게 하면 십 년 가까이 일기를 쓸 수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는 음 그냥 주기적으로 쓰고 싶은 게 생기고 의무감에서 뭘 쓰겠다고 하는 건 아니고 그냥 편하게 쓴다고 대답했는데 그건 충분한 답변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글로써 권력을 얻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글로써 명예와 권위를 얻고 싶었다. 철학과로 전과해서 대학원 과정을 밟아 학계에 적을 두고 연구하고 글을 쓰면 내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래서 열심히 이론서를 읽고 똑똑한 친구들 곁에서 서당개가 풍월 읊듯이 그네들의 말을 경청했는데 내 허약한 몸과 마음 그리고 쓸데없는 이상주의와 완벽주의로 인해서 나는 내가 원하는 '번듯한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래도 글을 쓰고 싶으니까 내가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일기 쓰기에 어느 순간부터 의미를 부여하고 나름대로 공을 들여서 꾸준히 남들이 읽을 수 있는 블로그에 공개적으로 게시하게 된 것이다. 일기를 쓰는 건 글로써 내 가치를 증명하고 싶다는 인정욕... 그래도 내가 아예 글을 못 쓰는 건 아니라는 나 자신의 자존심을 사수하는 최소한의 행위...? 뭐 그런 것도 있는 것이다.
나의 꿈?은 그 어느 것에도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순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인데 아직은 그게 힘든 것 같다. 내가 하는 것에 자꾸 정당함이나 이익 등의 의미를 부여하는 걸 그만 두고 싶은데 아직은 힘들다. 차라리 의식할 수 있는 모든 것에다 쓸데 없는 의미를 부여하는 쪽으로 노력하고 있다.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자연스레 모든 것에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굳이 내가 의미를 부여하려 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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