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7일

나는 뭐든지 열심히 한다. 누워 있는 것도 열심히 누워 있는 것이다. 앉을 기운이 있으면 절대 눕지 않는다. 내가 눕는 건 정말로 앉아 있기가 힘들 때, 졸릴 때다. 기왕이면 누울 땐 늘 잠들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누워서 핸드폰으로 재밌게 볼 수 있는 뭔가가 있다거나. 누워 있는데 볼 만한 재미 있는 것도 없고 잠도 안 오는 게 제일 최악이다. 나는 늘 뭔가를 열심히 해야 한다. 몰두하지 않으면 좀이 쑤시고 견딜 수가 없다. 무얼 해야 하지 같은 고민이 들 새가 없이 늘 무언가가 쇄도하고 그 쇄도하는 것을 수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십대 시절엔 낮잠을 좋아했지 누워 있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어서 누워서 할 거라곤 자는 거 혹은 책을 읽는 거였는데, 그때는 앉아서 책을 읽을 힘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 굳이 눕지 않아도 됐다. 중학교 2학년 때의 여름방학이 생각나는데, 그때 난 책상에 앉아서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렸다. 친오빠가 컴퓨터 게임을 금지당하고 엄마아빠한테 그 대신에 만화를 그리고 싶으니까 그림 그릴 도구 등을 사 달라고 했었는데, G펜이라든지 잉크라든지 만화용지라든지 마카 등등을 쭉 쓰는 건 나뿐이었다. A4 용지에 창작 캐릭터를 그리고 펜선을 따고 마카로 열심히 칠하고 그렇게 그림을 한 세네장 그렸던 거 같다. 그렇게 그리고 색칠한 그림 중 하나는 담임선생님께 선물로 드리기도 했다. (나름 잘 그렸다고 자부했기에, 과시하는 느낌으로 선물했던 거 같다) 아무튼 그때 할 게 없어서 심심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던 것 같다. 밖에서 놀 친구도 없어서 그냥 하는 거라곤 동네 보습학원 왔다갔다 하면서 학원 숙제 하고 남은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거나 혼자서 그림과 만화를 그렸는데 그때의 불만이라곤 그냥 엄마아빠가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흔한 사춘기 애새끼의 그것 뿐이었다.

그랬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생각해보면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도 몰두할 것이 없고 몰두하고 싶은 거에 몰두할 수가 없어서 그랬던 거 같다. 내가 지나치게 열심히 살아서 컨텐츠를 다 소비했기 때문인 거 같다. 20대 초반에 벌써 인생이 재미 없고 그냥 인생 접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내가 토끼공듀처럼 열심히 살아서 그렇거나 혹은 쉽게 질리는 성질 때문이다.

오늘 아카기 애니메이션을 다 봤는데 다 보고 나니까 할 게 없어서 죽고 싶었다가 얼마 전에 샀던 사라 아메드 행복의 약속을 펼쳤는데 생각보다 재미 있어서 쭉 읽으니까 죽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책을 읽다가 엄마가 저녁을 차려서 닭도리탕이랑 함께 먹었고 밥을 먹으면서 행복에 대해서 생각했다. 행복에 대해 생각하다가 갑자기 옛날 어느 순간부터 꿈꾸던 망상이 떠올랐는데 그건 내가 나무가 되는 것이다. 무생물에 가까워 보이는 생물이 되고 싶었고 그건 일종의 탈인간에의 소망이기도 하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탈인간이 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죽어서 생명활동을 정지하는 것뿐이라서 아 나는 탈인간하기 위해 자살하고 싶은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무튼 그런 생각이 들면서 인간 뭘까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으로 살기란 사회 속에서 일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는 그런 건데 정말이지 지금의 나로서는 하기 싫은 것들을 하는 게 인간인 것이다. 나는 일하기 싫고 고민하기도 싫다. 기계처럼 계속 작동하거나 나무처럼 광합성을 하고 싶을 뿐이다. 신이든 뭐든 누군지간에 뭔가가 내 소원을 들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