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요새 주식을 공부하고 있다. 그전까진 삶이 너무 무료했는데 주식판에 뛰어들고 주식 공부를 하느라 TV 프로랑 유튜브랑 책 기타 등등을 읽는데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한다. 자기가 2, 3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증권회사 애널리스트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걸 말하는 엄마는 생기가 넘쳐 보였다. 그걸 들으니까 엄마한테 내 시간을 주고 싶었다. 지금의 엄마는 29세무직정신병자번탈녀인 내 몸을 더 가치 있게 쓰고 멋진 청춘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포치타처럼... 나는 엄마의 꿈 얘기를 듣는 게 좋았어 그러니까 엄마의 꿈을 내게 보여줘 하고 엄마한테 내 몸뚱이와 시간을 양도하고 싶은 그런 기분? 아빠는 백신 몸살을 앓고 있다. 어제 엄마랑 나랑 각자 돈 버는 일을 끝내고 집에 여덟시 사십오분 즈음 도착했고 보통은 아빠가 늦은 저녁을 차린다. 아빠가 끙끙 앓는 바람에 나 아니면 엄마가 저녁을 차려야 했는데, 엄마는 하루 종일 일하느라 힘들어 보여서 그냥 내 돈으로 굽네치킨이랑 시카고피자 세트를 시켰다. 그걸로 일용할 양식을 먹고 뒷정리까지 내가 다 했다. 아빠는 아프다고 하는데 엄청 잘 먹었다. 아빠는 언제나 잘 먹는다. 냉장고에 있던 샐러드까지 야무지게 먹고 아빠는 나한테 고맙다고 딸밖에 없다고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설거지 하고 식탁도 닦은 다음에 내 방으로 돌아가서 핸드폰으로 트위터를 보는데 연숙이가 작업실 빼는 거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길래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게 바로 오늘인데, 방금 전 연숙이가 일정이 변동되어서 오늘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얼음을 잔뜩 넣은 몬스터에너지를 마시면서 책상에 앉아서 일기를 쓰고 있다. 당분간은 취업 준비와 관계 없는 철학책 문학책 아무튼 사놓고서 1나도 안 펼친 책을 읽는 걸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아니, 보낼 수밖에 없다. 일기 빼고는 어떤 글도 쓸 의욕이 없다. 취업에 도움이 되는 자격증 공부도 하기가 싫다. 이건 미친 지구 온난화로 인해 빨리 찾아온 무더위 때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