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 시리즈 프롤로그 중셉
얼마 전 ‘장롱면허’에서 탈출하기 위해 도로운전연수를 10시간 받았다. 내가 원해서 한 건 아니었다. 석사 수료 후 취업 준비를 하느라 부모님 집에 얹혀 산지 대충 5개월이 되었을까, 아빠가 차려준 저녁을 먹는 어느 날 아빠는 이제 네 나이 29살 운전은 할 줄 알아야 하지 않냐고 물었다. 2015년 12월 즈음 휴학해서 집에 있던 나에게 아빠는 이때와 비슷한 말을 했었다. 성인이 되었으니 자동차 운전은 할 줄 알아야지.
처음에는 1종 운전면허 연수를 받았었다. 솔직히 한국 같은 교통체증이 심한 나라에서 용달차나 학원 차량을 운전하며 먹고 사는 사람 말고는 수동 기어 달린 차를 모는 사람은 ‘마니아’라는 이름의 변태밖에 없을 텐데 부모님은 기어코 나한테 1종 운전면허 연수를 받게 했다. 기능시험을 통과하고 도로 연수를 받던 두 번째 날 내 아버지 또래로 보이는 운전 강사는 대체 1종을 왜 따냐고 나한테 택배 기사 할 거냐고 물었었다. 그리고 그 강사는 연수를 받는 내내 그딴 식으로 하면 사람 죽인다고 기어를 그렇게 넣으면 안 되지 기타 등등의 정신 공격을 수없이 퍼부으며 내 진을 빼놨다.
다행히 그날 이후 그 강사한테 도로 연수를 받지는 않았는데 아무튼 나는 존나 하기 싫다는 생각을 하며 기계적으로 차를 몰았고 면허 시험날 나는 시동을 두 번 꺼뜨렸다. 하필이면 우회전 도로가 하나밖에 없는 길목에서 시동을 꺼뜨렸고 시험 시간은 하필 퇴근 시간대여서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성난 운전자들이 미친듯이 경적을 울려댔다. 신경질적인 경적 소리로 나는 거의 혼절할 뻔했고 옆에 앉아 있던 시험 감독 선생님께 시동을 다시 걸 수가 없다고 도저히 못 하겠다고 말했다. 푸근한 인상의 할아버지셨던 시험 감독관 선생님과 나는 내려서 자리를 바꿨다. 그 와중에도 나 때문에 우회전을 할 수 없어서 화가 난 운전자들이 계속 경적을 눌러댔다. 나를 죽이려 들 것 같이 울려대는 경적 소리 가운데에도 감독관 선생님은 태연했다. 느긋하게 시동을 걸고 운전면허 학원으로 돌아가면서 감독관 선생님은 내게 이러저러한 조언을 해 주셨다. 아주 따스하게 말씀해 주셨던 거 같은데 나는 당장이라도 엉엉 울어버릴 것 같은 상태여서 감독 선생님의 말씀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바로 2종 운전면허로 바꿨다… 2종 운전면허도 단번에 붙지 못 했고 한 번 떨어지고 며칠 뒤 두 번째 시험에서 간신히 붙었다. 그때 감독 선생님은 무뚝뚝하고 엄격한 사람이었는데 2종면허 첫 번째 시험 때는 나한테 우회전하거나 차선 변경을 할 때 한 번도 옆을 쳐다보지 않았다고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아냐면서 나한테 운전 연수를 더 받을 것을 강권했었다. 하지만 난 운전 연수를 더 받지 않고 며칠 뒤에 다시 시험을 봤고 감독 선생님도 똑같이 그분이셨다. 아무튼 고개를 돌려가며 미친듯이 양옆을 살폈지만 며칠 만에 운전하는 거라서 운전 자체는 첫 번째 시험보다 미숙했다. 감독관 선생님은 운전 연수 안 받으셨죠?라고 탓하듯이 물었다. 아무튼 합격은 했다. 합격은 했는데 감독관 선생님은 마치 ‘내 손으로 잠재적 살인자를 도로에다가 풀어 놓아야 한다니…’ 같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 보았고 나는 그 눈빛을 보며 ‘다시는 운전 같은 건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대략 6년 뒤… 나한테 운전 연수를 받으라니… 아직 취직도 안 했고 자차도 없는데 나중에 자차로 출근할 일이 있으면 그때 배우겠다고 했다. 아빠는 취직하고 나서 운전 연수를 받을 시간이 나겠냐, 지금처럼 시간이 널널할 때 미리 배워 둬야지 등등의 이유를 거론하면서 자기가 운전 연수비를 지원해 줄 테니 운전을 배우라고 강권했고 나는 마지 못해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난 운전 연수를 10시간 정도 받았고 엄마는 돈 들여서 운전 연수를 받았으니 그 값을 해야하지 않겠냐고 시도때도 없이 운전할 건덕지가 있을 때마다 나한테 운전을 시켰다. 그래서 두 번 정도 엄마를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을 했다. 어제 두 번째로 엄마를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을 했는데, 점심 먹으려는 가게 근처에 있는 마트 주차장에 진입할 때 속도를 충분히 늦추지 못해서 어디 박을 뻔했고 점심 먹고 나서 운전할 때에는 갓길에 차를 대려다가 보행자 도로턱을 박을 뻔했다. 어찌저찌 집 주차장까지 왔는데 운전 연수를 받으면서 선생님께 배웠던 후진 주차하는 법이 생각나지 않아서 엄마한테 시켰다. 엘리베이터로 가면서 엄마한테 “나는 최선을 다 했어”라고 말했는데 엄마가 “왜 내가 억지로 시켜서 마지 못해 운전한 것처럼 말해?”라고 대꾸했다. 그렇게 운전하는 게 싫냐고 말했다. 당연히 나는 운전하는 게 싫었다. 그렇지만 운전을 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고 있기 때문에 운전을 했을 뿐이다.
“나 편하자고 너한테 운전을 시킨 게 아니라 네가 운전하는 거에 익숙해지도록 한 거야. 널 위해 운전 연수를 배우게 한 건데 네가 이런 식으로 구네. 그냥 너한테 뭘 권하지 말고 내버려뒀어야 했는데.”
그렇게 말하고선 더 이상 나랑 말 섞기 싫다는 듯이 엄마는 입을 다물었고 나는 빡이 쳤다.
‘아니 왜 시키는 대로 했는데 지랄이야?’
‘엄마아빠가 시키는 건 뭐든지 흔쾌히 해야 하는 거야? 엄마아빠가 날 위해서 한 거에 뭐든지 기뻐해야 하는 거야?’
알프라졸람 3알을 털어 놓고 침대에 누웠다. 이미 나는 처음 화가 났던 계기에서 한참 떨어진 온갖 억울함과 분노로 온 몸이 불타 올랐다. 내 머릿 속에 이글거린 건 대충 이랬다.
“내가 하고 싶은 거? 죽는 거 빼곤 없어 그러니까 죽는 거 말고는 다 하기 싫어 그리고 엄마아빠는 나를 위한답시고 그런 것들을 시키는데 나를 아껴서 그런다는 걸 아니까 싫어도 억지로 하는 거야 그리고 아무튼 시키는 대로 했는데 그거로 만족하면 안 될까? 하기 싫은 거 억지로 시킨 나쁜 부모라고 생각하지 말고 너네를 위해 억지로라도 하는 내 노력을 가상히 여겨 주면 안 될까? 사는 게 고통인데 너네들이 죽지 말라고 하잖아 사는 건 나를 위한 게 아니야 너네들 때문에 사는 거지. 그렇다고 너네들한테 내가 살아 숨쉬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하라고 뻔뻔하게 말하지는 않잖니? 내가 바라는 거 너네들이 이뤄 주지도 않을 테니까 아무 것도 안 바라는 건데 왜 너네들은 ‘너가 바라는 건 없어? 너 왜 이렇게 불행해 보여? 우리가 바란 걸 억지로 하느라 그런 거니?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왜 행복하지 않아? 왜 우리가 너를 착취하는 것 같은 모양새로 만들어?’ 이런 식으로 나한테 항의를 한다고? 내가 괜찮다고 했잖아 그리고 내가 말했잖아 나는 죽고 싶은 거 빼곤 바라는 거 없다고 하지만 앞으로 언젠가 죽는 거 말고 다른 하고 싶은 게 생길지도 모르니까 그때까지 억지로 웃으면서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가려는 나를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오니? 행복해 보였으면 좋겠다는 거 그것 빼고 다 할 수 있다는데 그 죽어도 못 하겠다는 그거 하나를 나한테 강요해? 진짜 너네들은 이기적이다.”
이미 ‘너네들’은 내 친부모를 떠나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 수 없는 대명사가 되었다. 부모님인지 세상 모든 사람인지 아무튼 누구인지도 모른 채로 그렇게 실컷 화를 내다가 기절했다.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소리조차 듣지 못한 채 그렇게 쿨쿨 자다가 저녁 먹으라는 소리에 깼다. 깨고 나서도 기분이 좋지 않아서 밥 먹고 바로 취침약을 먹고 알프라졸람도 2알 더 먹고 다시 기절했다.
오늘이 왔다. 일하러 나가는 엄마한테 나 카페 갈 거니까 가는 길에 태워다 주면 안 되냐고 부탁했고 그렇게 나는 지금 과외 학생 집 근처 카페에서 아이패드로 글을 쓰고 있다. 차를 타면서 엄마랑 과외 학생에 대한 것을 말했다. 어제 속으로 엄청 화내고 욕했던 게 거짓마냥 엄마랑 얘기하면서 별 느낌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무서웠다. 어찌 보면 사소한 계기로 화가 나고 억울한 거였는데 그걸로 갑자기 온 인류를 저주할 지경까지 불탔다는 게 무서웠다. 억울하다는 걸로 불타서 잿더미가 된 내 마음의 풍경을 상상하며 억울함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이하 미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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