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5일 (부제: 내가 뭘 쓸 수 있지)
부제: 내가 뭘 쓸 수 있지 <- 는 나 자신에 대한 비관적인 물음이 아니라 진짜로? 내가 무얼 써서 사람들에게 보여줄 만한 번듯한 글 한 편을 완성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물음이다.
요사이 이 질문이 나를 사로잡고 있는데, 그 이유는 친구가 사주를 봐 주면서 너는 올해 글을 쓰기 좋아, 너는 글을 써야 하는 팔자야, 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주를 엄청나게 신뢰하고 친구의 조언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겠다는 그런 수동적인 이유에서 그치는 건 아니다(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남들은 어떻게 볼 지 모르겠다). 그 말이 나에게 어떤 결심과 다짐? 정말로 그렇게 해야 겠다는 결단을 주었기 때문에? 사주에서 글 쓰래서 글 써야겠다는 말로 글쓰기에 대한 나의 열망과 고민?을 야기한 원인 전체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점점 변명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전 단락에서 '아 엄마 사주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고 이거 진짜 내 결심이야!!'라는 식으로 이 글을 보는 독자에게 변명한 게 무색하게도 또 다시 친구가 봐 준 사주 이야기에 대해 언급하려고 하는데... 사주 보면서 친구가 말한 것 중에서 제일 꽂힌 부분은 내 생산력의 원천이 취약하다는 점인데... 글쓰기를 농사 짓는 걸로 비유하자면... 완성된 글은 쌀이든 과일나무든 아무튼 농작물이라고 치고 그걸 키우기 위해서는 땅이 필요하잖슴? 근데 그 땅이 작기도 하거니와 그 작은 땅이 소화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농작물을 심은 다음에 아직 가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매일매일 낫을 들고 그걸 쳐다보며 이걸 수확해서 쌀 1억 가마니 얻는 생각. 부자되는 생각. EZR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땅을 더 늘린다 (레퍼런스가 될 만한 책을 많이 읽고 체력과 정신력을 기른다)
2) 너무 많이 심지 않고 인내심을 갖는다 (지금 갖고 있는 땅으로 단 한 뿌리에 불과하지만 아무튼 실한 놈을 하나 심어서 그걸 애정과 인내심을 갖고 잘 가꾸고 수확한다)
이제껏 2번에 해당하는 걸 해온 건 이 블로그에다가 일기를 쓰는 것?이다. 일기 쓰는 건 그렇게 부담되지 않는다... 1번은 뭔갈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 평생 해 나가야 하는 숙제이긴 한데 요새 나는 좀 차분하게 책을 읽고 나 자신의 그릇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생각해보면 뭘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을 업으로 삼겠다는 친구들에 비해 내가 책을 덜 읽기는 했다. 이게 내 잘못이라는 건 아니지만... 그냥 차분하게 무얼 읽는 데 몰두하기가 힘들었다. 힘도 없고 틈만 나면 친구들이랑 놀고 게임하고 그래서... 그리고 뭘 읽는 것마저도 빨리 빨리 읽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려 꾸준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도 못 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어제는 사라 아메드의 행복의 약속을 좀 차분하게 읽어 보았다. 겨울에 2장 중반까지 읽었다가 놔 둔 부분부터 시작해서 3장까지 다 읽었다. 사라 아메드는 역시 개쩐다는 생각을 하면서 재밌게 읽었다. 읽으면서 행복은 부동, 죽음이고 불행은 운동과 삶 아닐까? 행복한 사람들은 죽은 사람 아닐까? 불행할 때야말로 진정 내가 살아 있음을 실감하는 때 아닐까? 소위 '행복과는 먼 짓'을 하는 사람들이 벌여 놓은 '지 팔자 지가 꼬는 행위'들은 역사에 기록되고 그럼으로써 그 불행은 기억과 전승을 통해 영원히 생명을 얻는 게 아닐까? 만약 '기록된 행복'이 있다면 그것은 내 발상에 대한 반례가 될 텐데 그런 것들이 있을까? 등등을 생각했고... 그렇다면 이것은 내가 쓸 수 있는 어떤 것이 될 수 있으니까 '뭘 써야 하나'에 대한 고민 해결? 등등을 생각했다.
이런 발상들은 잘 떠오르는데 문제는 그걸 끝까지 키워내지 못한다는 것인데... 이 발상들을 키워낼 내용들을 내가 잘 찾아보고 그걸 내 식으로 소화해야 하는데 그걸 못 하니까 답답하다. 발상을 구체화할 수 있는 능력을 대학교 학부랑 대학원 석사 때 키우고 싶었는데 내가 조급증이 너무 심해서 충분히 갈고 닦지 못했다는 게 안타깝다. 그렇다고 자괴감이나 후회까지 가지는 않고... 그저 나는 늘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 문제는 현재와 미래다. 변화해야 하는데 자꾸 과거에 사로잡혀서 꾸준하게 해 나가질 못 한다. 이런 인식도 자책일까? 후회일까? ~이하 무한히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들~'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지만 잘 모르겠고 편해지고 싶다는 유혹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니깐 나 뭐 하지?
일단 저녁에 과외 수업 있으니까 너무 힘 빼지 말아야지
누워만 있어도 괜찮고
아무튼 나 쓰고 싶어 글을
(쓰면 되잖아)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