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21일

일어나서 밥을 먹을 생각을 하니까 욕지기가 치밀어 올라서 결국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편의점에 가서 미숫가루 두유로 허기를 달랬다. 사실 여전히 허기가 있어서 잘 달래진 것 같지는 않다. 이왕 내려온 김에 단골 미용실 예약을 할까, 하고 1시에 예약을 잡으려고 했는데 휴대폰 인증을 하다가 그새 다른 사람이 예약한 모양인지 예약을 놓치고 말았다. 지금은 오랜만에 혼자 스타벅스에 왔는데, 내가 이곳을 몇 시간이나 견딜 수 있을까 각을 보고 거기에 맞춰 미용실 예약을 하려고 한다. 

이틀 전 본가에 있으면서 핸드폰으로 친구들 블로그를 둘러봤는데, 친구들이 자기 셀카를 올리기도 하고 자기가 무슨 일을 겪었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등등을 알 수 있었다. 개 뜬금 없지만 율피 셀카를 보고 율피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병아리색으로 머리를 탈색한 셀카였는데 너무 예뻤다. 볼때마다 감탄하게 되고 이런 예쁜 애랑 내가 친구가 되다니 내심 감격 뭐 갑자기 쓸데없이 벅차오르고 가슴이 웅장해지고 그런다 <- ㅋㅋㅋ 내 주변에는 예쁜 여자애들이 많은데 이때 내가 걔네들을 예쁘다고 미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우정이라든지 기타 등등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경험이 섞여 들어간 건데 아무튼 예쁜 여자친구들을 볼 때마다 괜히 뿌듯해지고 지랄이다. <- 엄마세요? 헛소리를 계속하자면 내가 쓰는 예쁘다 잘생겼다 라는 표현은 식된다 라는 표현과 동의어가 아니다. 노식인데 뭐랄까 굉장히 보기 드문 외양과 매력을 가졌거나 이목구비가 비율적으로 참 아름답게 자리잡았다던가 등등... 아니 왜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앉아있지... 아무튼 내 친구들은 귀엽거나 예쁘다. 잘 생긴 친구는 없다 (이유: 잘 생긴 애들한테는 환상이 있어서 환상 안 깨려고 친구 안 하려고 함 <- 노답) 

아무튼... 율피 셀카와 일기를 보고 성훈이가 과제하다가 뚝배기 과열와서 충동적으로 쓴 일기를 운 좋게도 읽을 수 있었는데 (성훈이는 일기를 꼭 지운다. 한정판인 셈이다) 뚝배기가 과열된 와중에도 이렇게 문학적으로 아름다운? 일기를 쓰다니? 네 녀석 대단하잖냐www 라는 감상과 동시에 성훈이에게 또 질투를 느끼고 말았다. 내 주변에 예쁜 애들이 많듯 또한 내 주변에는 똑똑하고 글 잘 쓰는 애들이 많은데 (이것도 나의 자랑이고 괜히 생각하면 벅차오르고 가슴이 웅장해지고 뇌절그만) 이상하게 질투가 나는 유형의 애들이 있는데 성훈이가 그렇다. 내가 쓸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글쓰기를 해서 그런가? 아무튼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 현생 열심히 살고 글도 잘 쓰다니 괘씸하잖냐www (성훈이: 저 현생 제대로 못 살아서 밤 새고 이러는 거잖아요;;) 얼마 전에 성훈이랑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공부했었는데 연숙이가 준비하는 웹진에 글을 투고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쁘면서도 얼마나 질투가 났던지. (몇몇 사람들: 그럼 님도 글을 투고하세요;;) 아무튼 성훈이 글 잘 쓴다. 멋지다. 대단하다. 자랑스럽다. 

친구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떠올리면 그 감정들에서 흔히들 가족애라고 부르는 그것과 비슷한 애틋함과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곤 하는데, 내가 정말 우정이란 것에 목 말라있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지나치게 나를 기쁘게 하거나 벅차오르게 하는 것에서 나는 내 성품적 결핍을 읽어내고 그것을 자꾸 부정적인 것으로 합리화한다. 이제 그런 건 그만두기로 했다. (결심을 했다고 반드시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벅차오르면 벅차오르는대로 일기에 쓰고 나중에 읽어보고 너무 부끄러우면 성훈이처럼 글을 삭제하던가. 뭐 그러면 되겠지. 

계몽의 변증법 기말보고서 때문에 아도르노 도덕철학과 관련된 국내 논문들을 1억개 정도 다운 받아 놨는데 외국어 논문 읽다가 한국어 논문을 읽으니 그것 자체만으로도 날라다니는 기분인데 잘 쓰인 논문도 꽤 많아서 읽는 게 즐겁다. 이번에는 기말보고서 완성해서 제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긍정적인 기분이 들다가 곧 그 감정에 초를 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기대하면 안 돼. 그랬다가 못 내면 나 자신에게 엄청나게 실망할거야, 같은 그런 기분. 이런 것도 그만두기로 했다. 아무튼 아도르노 관련 국내 논문을 읽으며 즐거움을 느꼈고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은 사실이다. 기분이 든 것과 실현은 별개고, 그 이전에는 잘 될 것 같다는 기분조차 들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잘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자. 그리고 내가 철학을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공부 하기 싫다는 마음이 나를 압도한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 제대로 실패해 본 적은 없지만 실패할까봐 무서워. 실패해도 다시 하면 되는데, 실패해도 잃을 게 없는데, 실패해도 도와줄 사람들이 있는데, 그래도 나는 실패를 두려워 해, 내가 그러고 있다, 그런 것도 인지한다.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을 흘러가게 내버려두지 않고 그것을 움켜쥐어 어떻게든 거기에서 과도하게 의미를 짜내려는 짓은 그만두려고 한다. 판단이 들더라도 판단도 흘러가게 내버려 두자. 아무튼 내버려 두자. 요새 이런 결심을 나 스스로 정말 자발적으로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즐겁다. 그냥 즐거워하기. 기뻐하기. 슬퍼하기. 실망하기. 무서워하기. 걱정하기. 불안해하기. 그리고 그것들은 소나기처럼 확 내렸다가 금세 그치기도 하고, 아니면 장마처럼 오래도록 내 마음에 비를 내리게 할 수도 있다. 어쩌면 노아의 홍수처럼 계속될지도 모르지. 그건 그때그때 느끼면 된다.

조금 더 나 자신 밖으로 벗어나는 말하기, 글쓰기를 하고 싶다. 나 자신 주변을 빙빙 돌거나 나 자신 속으로 침잠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나는 그걸 너무 지나치게 많이 한 것 같다. 세상의 균형을 위해 좀 트여 있고 싶다. 트여 있는 글쓰기, 나 자신 밖으로 벗어나는 말하기가 구체적으로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일단 이 일기가 어느 정도 예전에 심한 우울증으로 디비져서 아프다 아프다 끙끙 앓는 일기보다는 좀 더 나 자신 밖으로 나간 글이라고 느껴진다. 어쩌면 단순하게 그냥 즐겁게 글을 쓰고 싶다 라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여 있는 글쓰기가 반드시 즐겁게 쓰는 글쓰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순간을 고정하고 어떤 생각을 기록하는 것으로 글쓰기가 시작되지만 글을 쓰는 여정에서 글쓴이는 변해질 것을 요구받고 그 요구를 거절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요구를 도전과제처럼 받아들이고 싶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글을 쓰면서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건 어느 정도 노력과 아픔을 요하는데, 앞으로는 그런 노력과 아픔에 대해 내가 감히 감당할 용기를 갖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즉 글쓰기를 통해 가오를 실현하고 싶다...

요새 나는 살고 싶은 걸까? 나는 살고 싶은 것 같아, 라고 소리내어 말할 용기는 아직 없다. 적어도 당분간은 죽음에 대해 몰두하지 않았다는 것까지만 확언할 수 있다. 거실이 있는 1.5룸을 갖고 싶어, 보드게임을 모으고 싶어, 만화책을 사고 싶어, 누구누구를 보고 싶어, 돈을 지금보다 더 벌고 싶어, 그런데 더 놀고 싶어, 이것 또한 확언할 수 있다. 이런 바람들을 쫌쫌따리 모아서 ‘살고 싶어’라는 거대한 말에 포섭시킬 수 있을까? 아직 나는 주저한다.

아도르노 수업 섹슈얼리티 수업 소논문 각각 하나씩 완성된 형태로 제출하고 지옥불같은 여름 속에서 위에서 내가 늘어 놓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싶다.

그리고 치질씨발. 다행히 치질연고를 꾸준히 바르고 유사좌욕을 하고 (좌욕기는 내일 살 예정) 그래서 지금은 좀 괜찮다. 그리고 어깨랑 날개뼈 목 통증 씨발. 열심히 스트레칭을 하고 파스를 붙이고 그러는 수밖에. 진짜 여름방학 때 식단 운동 빡세게 해서 몸을 강제개조 시켜버릴까 고민했다. 그것도 뭐 학기가 끝나면 생각해보자. 

몸을 잘 다스리자.
속은... 약을 많이 먹어서 속이 쓰리는 거라서 마음이 건강해지면 먹는 약이 줄어서 속도 덜 쓰릴 거다...
커피.... 커피를 포기할 수는 없어... 그래도 하루에 한 잔만 마시자... (사실 공부를 안 하면 커피를 마실 일이 없다)
밥은... 욕지기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견디면서 어떻게든 많이 먹도록 하자. (이것도 역시 약을 먹어서 생긴 부작용이므로 마음이 건강해지면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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