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3일
요 며칠간 내 친구들 중 몇몇 정신병자들이 우울삽화로 발작했는데, 나 또한 어젯밤에 우울발작 지랄에 시달렸다. 지랄이라고 해 봤자 자살하겠다 나를 사랑해라 뭐 이렇게 능동적으로 정병빔을 쏘진 않았고 그냥 천천히 풍화되는 느낌 점점 밑으로 가라앉고 말 하기가 힘들고 자유의지가 사라진 로봇이 되는 그런 기분 천천히 굳어가는 석고 같은 그런 느낌이다. 옆에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이 걱정을 했다. 혼자 있으면 안 될 거 같으면서도 (아니, 사실 그냥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해서 혼자 있기 싫었던 거 같다) 그냥 기숙사 가서 약을 먹고 빨리 강제로 전원을 끄고 다음날 아침 재부팅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기숙사로 가서 약 먹고 잤다. 자기 전에 서점에서 산 타로카드 책 두 권을 훑고 오랜만에 타로카드 파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카드들을 구경하다가 잠이 몰려와서 잤다. 아침 일곱 시 즈음에 깼고 그 전날 사 두었던 컵라면을 하나 먹고 다시 알프라졸람을 먹고 잤다. 자위하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 느꼈던 오르가즘은 아주 좋았다. 지금은 약 때문에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그런 강렬한 오르가즘이었다.
아침약을 먹고 강제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어젯밤 로봇이 되는 그 기분은 사라지긴 했지만 모든 것에서 도망가고 싶다는 느낌 당장 오늘 수업을 듣고 싶지 않았다. 푸름이가 보고 싶어서 푸름이랑 점심 먹고 카페에 가서 지금 각자 할 일을 하는 중이다. 타로카드를 며칠 전 시작했다며 푸름이한테 타로카드를 좀 봐 주고 푸름이가 이제 공부하자고 해서 나는 이미 30분이 지나간 수업에 지금이라도 접속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다가 타로점에서 나한테 정체해 있지 말고 인내를 가지고 꾸준히 나아가야 하고 그게 헛된 일은 아니다, 뭐 그런 정도로 해석했던 타로점 결과를 상기하며 수업에 접속했다. 수업을 들으면서 이 일기를 쓰고 있다.
숲으로 둘러싸인 별장에서 요양하면 좋을 거 같다는 망상을 했다. 나는 귀족 혹은 부르주아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기숙사가 너무 싫었다. 그냥 기숙사라는 공간 자체에 환멸이 났다. 이건 나 자신에 대한 환멸을 내가 거처하고 있는 6평 남짓의 공간에 투사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기숙사가 싫은 건 사실이다. 그래서 학기 초에는 자취방이 있는 친구들한테 자꾸 찾아가곤 했고 요새는 민규의 자취방에 그렇게 머물곤 했다. 친구의 자취방에 전전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나한테 살 만한 집이 있었더라면. 내가 부자였더라면. 내가 좀더 체력이 있었더라면. 내가 덜 진지한 인간이었더라면. 내가 덜 예민했더라면. 등등의 헛된 바람을 멈출 수 없었다. 만약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래부터’ 갖고 있었더라면 다른 식의 원망을 가졌으리라.
어제 지도교수님 수업을 무단결석하고 민규 집에서 테라포밍마스를 하다가 과외문의전화가 와서 응대했는데 전화 끝에 학부모님이 “혹시 과외비에 대해 조정이 가능할까요”라고 질문했는데 내가 너무 단호하게 “네”라고 대답했다. 그 이후에 그분은 “듣기로는 여자 선생님이라고 들으셨는데... (뭔가 아무튼 내가 여자 선생님인 것으로 소개 받았는데 이상의 뜻은 없는 횡설수설한 말들) 혹시 결혼하셨나요?”라고 물어서 “아니오” 라고 대답했다. 이제껏 많은 과외 문의 전화를 받았지만 결혼하셨냐는 질문을 들은 건 처음이다. 대체 그것이 왜 궁금한지? 민규한테도 물어보고 저녁 때 만났던 준호와 한영이한테도 물어 봤다. 아직도 왜 그걸 물어봤는지 잘 모르겠다..
나 같은 놈은 배가 부른 거야. 나 같은 놈들은 산업혁명 직후의 영국 노동자처럼 16시간 동안 관절이 휘어질 정도로 육체 노동을 해야 지금 처지에 만족할 거야. 등등의 생각도 했다. 이걸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 말한다면 그냥 우울의 한 증상으로 볼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우울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그 누구보다 내면화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내 생각보다 더 무엇을 할 수 있는데 그걸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 혹은 망상 아무튼 그런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이 이상 노력할 순 없다고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혹은 ‘그렇게’ 노력해서는 안 된다고 말 한다. 나는 ‘그 이상’ 노력하는 바람은 버렸지만 ‘그렇게’ 노력하는 방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는 편하게 사는 법이 뭔지 모르겠다. 발제를 못 하겠다고 발제일 당일에 선생님께 문자했을 때 건강이 많이 편찮으시냐고 물었는데 늘 항상 건강이 안 좋아서 어떻게 답장할지 모르겠어서 본의 아니게 선생님의 문자를 씹기도 했다. 나 자신에게 답답하고 나 말고 다른 우울증자 친구들을 걱정하면서도 ‘그래도 너희들은 무언가를 하고 있잖아. 앉아서 뭔가를 하고 있잖아. 혹은 노동을 하고 있잖냐. 나는 못 해, 못 하고 있다고’라는 피해망상에서 벗어나질 못해 그들을 미워하고 있다. 내가 아무 것도 안 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이상 하고 싶은데, 그게 과한 욕심이 아닌 거 같은데, 어째서 5년 간 나아지려고 노력했는데 예전과 같은 악순환을 계속 반복하는 거야? 등의 생각을 하면서 나보다 더 힘들어서 누워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우울증 약을 먹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 나보다 오래 앉아 있는 사람들을 질시한다.
나는 바보 같아. 바보야. 만족도 모르는 멍청이. 탐욕스러운 애새끼. 사랑 받지 못해 안달이 났으면서 정작 사랑을 받을 기회가 있으면 뻣뻣하게 굴거나 도망치는 그런 놈. 떠먹여줘도 못 먹는 놈.
내가 너무 허약해서 눈물이 난다. 가오도 상하고 사는 게 힘들다.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나보다 더 후진 것 같다. 상담선생님은 그렇지는 않을 거 같다고 말했는데,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더 허약해졌고 먹는 약도 늘어났고 학술적 글을 완성하지 못하는 병을 극복하지 못했다. 실제로 그냥 대충 하자 할 수 있는 것만큼 하자 라고 생각하며 썼던 발제문을 가지고 지도교수님은 너무 메모 같고 두서 없다, 즉 공을 덜 들였다고 평가했다. 구리더라도 그냥 대충 완성하자고 내놓은 것이 너무 별로여서 기분이 더 암울하다. 이 이상 더 힘낼 수 없어? 이 이상 더 발전할 수 없어? 그냥 내가 너무 많은 것들을 바라는 거야? 사람들은 보통 많은 것들을 바라는데? 나는 그냥 아무 것도 바라면 안 되는 거야?
등등
자해하고 싶어서 손가락 피어싱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등짝 문신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돈이 없다.
돈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내가 바라는 것 석사수료를 하는 것 아무튼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학점을 딸 수 없다 글을 완성해야 하는데 글을 어떻게 완성시켜?
그냥 써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모두 죽일 거야
그냥 써 라는 말을 20살 때부터 들었는데 나는 늘 깜빡이는 세로 커서만을 도전적으로 바라보고 힘겹게 한 문장을 뱉어내고 그러다가 글을 완성한 적도 있었지만 석사 들어서는 그런 적이 (한 번 빼고) 없다.
짜증나
진짜 짜증나
그냥 쓰면 되는데
쓰면 되는데
앉아서 쓰면 되는데
참고문헌을 읽고 쓰면 되는데
쓰는 애들 쓰고 있는 애들 모두 짜증나
내가 못 하는 것을 하고 있으니까 짜증나 (사실 내가 안 하는 것을 하고 있어서 짜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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